양용찬 추모사 1992년 11월 5일
추모사
제주도 개발특별법 철폐와 민자당 타도를 외치며 남도 제주에서 최초로 분신. 내 땅, 내 고향을 사랑한 나머지 숯덩이로 스스로 목숨을 바쳐 영원히 제주도 민중의 수호신이 된 고 양용찬 동지는 제주도가 제2의 하와이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우리 삶의 터전으로서, 생활의 보금자리로서 제주를 지키길 원했기에 특별법 저지 제2차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철회, 민자당 타도를 외쳤던 것입니다.
민자당은 군사독재의 찌꺼기를 상속한 김영삼의 어지러운 발언에 현혹되면 안 될 것입니다. 그들이 집권하면 바로 그 속셈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얼마 전, 저들은 날치기로 개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오늘 저는 경건한 마음으로 양용찬 동지 1주기를 추모합니다.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이름으로 민주주의 민족통일 제주연합, 제주도 개발특별법 철폐 및 민주화실천범도민회, 제주도농민회 그리고 민민가족(제야) 단체를 망라한 제주도민에게 추모를 드립니다.
유가협은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1970년대부터 이 땅의 독재 권력에 맞서 분신한 최초의 노동자 전태일 이후 노동자, 농민, 학생, 빈민 등이 독재에 맞서며 죽어 외치고 간 후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런 아픔을 함께 나누는 처지인 듯합니다. 하여 민주화로 가는 길에서 열렬히 투쟁 대열에서 앞장서 나가던 양용찬 동지 영전에서 뜨거운 눈물을 머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용찬 동지여, 당신은 사욕이나 개인을 생각하기에 앞서 민족을 생각해 봤을 것이요! 이 땅을 잠식해오는 미제국주의와 독재자들의 참담하고 음흉한 모의가 개발이란 이름으로 서민을 외면한 채 진행되는 이 상황을, 도민의 생존권을 무너뜨리는 이 악법을 당신은 죽음의 항거로 제지하려 노력했습니다.
제주도 4.3항쟁을 떠올립니다. 제주도 제2차 개발특별법 제정에 항의한 것은 4.3항쟁의 정신이 이어짐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외로운 투쟁은 자기와의 투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어떤 죽음과 어떤 투쟁이 민족사의 한 투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많은 제주 민중이 당신을 추모합니다. 당신은 제주와 함께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 많은 사람이 계속해서 그 뜻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지금 정국은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당신이 바라던 민주화 정부가 승리할 것을 가늠해 봅니다. 민중이 갈망하는 것이 당신이 원하던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우리 다 같이 민주정부 수립해 민족의 양심으로 살 수 있는 민주정부 원년을 만들어 냅시다. 그리하여 정의와 양심이 살 수 있는 땅, 민족의 양심을 가꿀 수 있는 땅을 만듭시다.
양용찬 동지여, 당신이 남기고 간 투쟁은 제주도민의 투쟁이요, 민주화 투쟁입니다. 그대가 남기고 간 뜻을 기리며, 그대 가족의 건강을 바라면서 당신과 뜻을 같이하고 먼저 간 고 박종철 아버지가 그대에게 드리는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바른 뜻을 같이하고 기리는 제주도민의 정성 어린 추모를 함께 하며 추모사를 드립니다.
통일염원 48년 11월 7일 전국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 회장 박정기
1994년 5월 11일
고 김귀정 1주기에 낭독했던 원고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던 차, 오늘 발견해 정리한다.
추모사
싱그러운 5월의 훈훈한 공기를 가르며, 이 땅의 참모습을 부지런히 가꾸고 역사 속을 파고드는 일들이 펼쳐지는 나날. 5월 하늘 아래 오늘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고 김귀정.
고 김귀정 영가여, 당신의 죽음이 이 땅의 거름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맞아주겠소. 귀정 영가여, 누군가 당신의 죽음을 힐난한다면 정말 나는 싫소이다. 더욱 거절하겠소. 그대의 마지막 죽음은 노태우 정권, 정치 모리배들이 소위 토끼몰이 작전이라는 공권력을 행사한 탓이오. 역사에 부끄러울 이 도둑을 꼭 잡아야 다음 세대라도 이런 일이 없을 것입니다.
비록 당신의 육신은 없어도 당신의 꽃다운 향기와 민주화의 기백은 영구히 우리와 같이할 것입니다. 한밤 최루탄 세례까지 받아가며 당신이 감수했어야 했던 일들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으로 남을 것입니다.
이날, 동지 최진호 씨와 근처 주유소에서 그 광경을 주시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의 만행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을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습니다. 귀정 영가여, 우리는 이제 이 지저분한 세상을 만든 놈들을 물러서게 만들고, 민중의 망치가 모가 닳듯이 5월 투쟁을 감행하느냐의 문제 앞에 서 있습니다.
당신에 대한 추모를 여기 마석에서 올리면서도 그대 마지막 가는 길을 알맹이 부족한 내용으로 대하고 보니 허전합니다. 귀정 영가여, 그대가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을, 민중과 빈민, 노동자, 학생 할 것 없이 모두가 나아가 그대가 동지들을 감싸고 아끼며 바랐던 일들을 이제는 우리가 해낼 것입니다. 남겨진 과제를 우리가 착실히 해낼 것을 작심하면서 김귀정 영가 앞에 영생을 드립니다.
1992.5 추모사로 마석에서 있었던 일을 나중에 원고를 발견하고 정리한 것입니다.